미야지마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이쓰쿠시마 신사의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주홍빛 회랑이 수면에 비치고, 히와다부키 지붕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일본 건축의 정수를 모은 걸작입니다.
이쓰쿠시마 신사의 건축은 헤이안 시대 귀족 저택 양식인 신전조(寝殿造)를 신사 건축에 도입한,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이코 천황 원년(593년) 창건으로 시작하여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대개수, 거듭된 화재와 복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은 주로 가마쿠라 시대 닌지 연간(1240-1243년)에 재건된 것입니다. 본전·배전·회랑 등 6동이 국보로, 14동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96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이쓰쿠시마 신사 건축의 역사적 경위
창건부터 헤이안 시대 전기: 해상 신사의 시작
이쓰쿠시마 신사의 창건은 스이코 천황 원년(593년)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지역 호족인 사에키노 쿠라모토가 신탁을 받아 조수가 밀려들고 빠지는 현재 위치에 사전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시대부터 이미 이쓰쿠시마는 ‘신을 모시는 섬’으로 신성시되었으며, 섬의 땅을 더럽히지 않도록 바다 위에 사전을 짓는다는 발상이 생겨났습니다.
창건 당시의 사전은 현재와 같은 대규모가 아니라 단순한 구조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섬 자체가 신체(御神体)라는 신앙은 이 시대부터 변함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미야지마의 주봉인 미센(표고 535미터)을 배후에 두고 바다를 전면에 배치한 입지는 자연과 신앙이 일체가 된 일본 고유의 종교관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헤이안 시대 후기: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대개수와 신전조 도입
이쓰쿠시마 신사 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이 헤이안 시대 말기 닌안 3년(1168년)에 이루어진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대개수입니다. 당시 아키노카미(安芸守)로서 세토나이카이의 제해권을 장악한 기요모리는 이쓰쿠시마를 해상 교통의 수호신으로 깊이 신앙하며, 현재 규모에 필적하는 장대한 사전을 조영했습니다.
기요모리가 도입한 것이 당시 귀족 저택 양식인 신전조(寝殿造)입니다. 신전조란 주인이 거주하는 신전(寝殿)을 중심으로 동서에 쓰이노야(対屋)라는 부속 건물을 배치하고 이들을 회랑으로 연결한 좌우대칭형 건축양식입니다. 기요모리는 이 양식을 신사 건축에 응용하여 세토나이카이를 ‘연못’으로, 사전을 ‘신전’으로 간주하는 독창적인 발상으로 설계했습니다. 헤이안 귀족들이 저택의 연못에 배를 띄워 관현 놀이를 즐겼듯이, 이쓰쿠시마에서도 바다를 무대로 관현이 봉납되었고, 이것이 현재의 ‘간겐사이(管絃祭)’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기요모리가 조영한 사전은 본전·배전·회랑 등 주요 건물이 바다 위에 늘어서며, 그 장엄함은 “극락정토를 표현했다”고 칭송받았습니다. 이 시대에 확립된 배치 구성과 건축양식이 현재 이쓰쿠시마 신사의 기본형이 되었습니다.

가마쿠라 시대: 화재로부터의 복구와 현재 모습의 완성
기요모리가 조영한 사전은 겐에이 2년(1207년)과 조오 2년(1223년)의 두 차례 대화재로 전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쓰쿠시마 신사에 대한 신앙은 헤이케 멸망 후에도 끊이지 않고, 겐지를 비롯한 당대 권력자들에 의해 계속 보호받았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주요 사전은 이 화재 후 닌지 연간(1240-1243년) 이후에 재건된 것입니다. 재건 시에는 기요모리 시대의 배치 구성과 건축양식이 충실히 계승되었습니다. 본사 본전은 겐키 2년(1571년) 모리 모토나리에 의해 개축되었지만, 마로우도 신사(客神社) 본전은 닌지 2년(1241년)의 건축이 현존하여 가마쿠라 시대의 건축 기술을 오늘날까지 전하는 귀중한 유구가 되고 있습니다.
가마쿠라 시대 이후에도 전국시대의 모리 모토나리, 에도 시대의 아사노 번 등 역대 권력자들의 보호와 수복이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모리 모토나리는 이쓰쿠시마 전투(1555년)에서 신성한 섬을 전쟁터로 삼은 것을 뉘우치며 오토리이 재건과 사전 정비를 실시했고, 현재의 오중탑(1407년 건립)도 무로마치 시대에 정비되었습니다.
이쓰쿠시마 신사 건축의 특징과 기술적 상세
신전조 양식의 신사 건축 응용
이쓰쿠시마 신사의 최대 특징은 헤이안 시대 귀족 저택 양식인 신전조를 신사 건축에 도입한 점입니다. 일반적인 신사 건축에서는 좌우대칭이 기본이지만, 이쓰쿠시마 신사는 신전조의 특징을 계승하여 의도적인 좌우비대칭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사 본전은 안쪽에서 앞으로 본전·폐전·배전·하라에덴의 순서로 늘어서 있지만, 이들의 배치는 완전한 좌우대칭이 아닙니다. 폐전과 하라에덴은 본전에서 보아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본전과 배전의 기둥 배치도 좌우대칭이 아닙니다. 이는 주신인 이치키시마히메노미코토를 모시는 부분의 기둥 간격을 다른 곳보다 넓게 잡았기 때문으로, 사전의 중축이 서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이러한 비대칭성은 신전조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설계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신사 건축으로서는 매우 드문 특징입니다.
또한, 본전의 지붕 형식은 ‘료나가레즈쿠리(両流造)’라 불리며, 기리즈마 구조의 정면·배면을 길게 뻗어 처마로 한 형태입니다. 신사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치기(千木)와 가쓰오기(鰹木)가 없고, 히와다부키 지붕에 기와를 쌓은 화장동(化粧棟)을 채용하고 있는 점도 신전조의 영향을 짙게 남기고 있습니다.
회랑의 구조와 메스카시 기법
이쓰쿠시마 신사의 경관을 특징짓는 것이 총연장 약 275미터에 달하는 동서 회랑입니다. 동회랑은 45칸, 서회랑은 62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폭 약 4미터의 넓은 통로가 바다 위의 각 건물과 육지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회랑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특징은 마루판 사이에 설치된 ‘메스카시(目透し)’라 불리는 틈입니다. 마루판은 1칸에 8장씩 깔려 있으며, 판과 판 사이에 의도적으로 틈을 두어 고조(高潮)나 태풍 시 해수의 압력을 약화시켜 건물을 보호하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는 ‘슬릿 구조’라고도 불리며, 파도의 에너지를 마루판 틈으로 빠져나가게 하여 도괴를 방지하는 선조들의 탁월한 지혜의 결정체입니다.
마루판에는 못이 사용되지 않았으며, 현재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아래에 있는 것이 본래의 마루판이고, 위에 깔린 것은 참배객이 신발을 신은 채로 걸을 수 있도록 근래에 시공된 ‘양생판’입니다. 에도 시대 이전에는 참배객도 신발을 벗고 승전(昇殿)했습니다. 또한, 회랑에는 모리 가문이 기증했다고 전해지는 쓰리토로(釣灯籠)가 걸려 있으며, 현재의 것은 다이쇼 시대에 봉납된 청동제입니다.

히와다부키 지붕의 전통 기술
이쓰쿠시마 신사의 본사, 마로우도 신사, 회랑 등 해역 부분에 세워진 건물의 지붕은 모두 히와다부키(檜皮葺)라는 일본 고유의 기법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히와다부키란 수령 70-80년 이상의 노송나무 입목에서 채취한 수피를 재료로 사용하는 지붕 잇기 기법으로, 세계 건축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본 고유의 기술입니다.
히와다부키는 헤이안 시대 이후 국풍문화의 영향도 있어 지붕 잇기 공법 중 가장 격식 높은 기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헤이안 시대 중기 이후에는 공적 의식의 장소도 기와 지붕의 다이고쿠덴(大極殿)에서 히와다부키의 시신덴(紫宸殿)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쓰쿠시마 신사의 히와다부키 지붕은 우아하고 화려한 곡선미와 처마가 깊은 약동감 넘치는 대지붕 구조를 가능하게 하여, 바다 위에 떠 있는 사전군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합니다.
히와다의 내구 연한은 30-40년으로 알려져 있으며, 국보·중요문화재인 이쓰쿠시마 신사의 건물은 이 주기에 맞춰 적시에 교체가 이루어져 건물을 풍우로부터 보호해 왔습니다. 2020년에는 ‘전통 건축 공장(工匠)의 기술: 목조 건조물을 계승하기 위한 전통 기술’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이 중에 ‘히와다부키·고게라부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쓰쿠시마 신사의 오토리이도 2019년부터 2022년에 걸쳐 약 70년 만의 대규모 수복 공사가 진행되어 히와다부키 지붕이 전면적으로 교체되었습니다.
해상 건축을 지탱하는 기초 구조
이쓰쿠시마 신사가 850년 이상 바다에 잠기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비밀은 그 교묘한 기초 구조에 있습니다. 건축사가의 연구에 따르면, 사전이 세워진 위치는 원래 육지였던 곳을 굴착하여 바다로 만든 것으로, 사전은 큰 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고 추정됩니다.
미야지마에는 주봉 미센을 중심으로 큰 암반층이 있으며, 사전은 이 견고한 지반 위에 초석이 되는 평석을 쌓고, 그 위에 108개의 기둥을 세워 구조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기둥은 초석 위에 놓여 있을 뿐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지진이나 고조 시 기둥이 어느 정도 움직여 에너지를 방출하고 건물 전체의 도괴를 방지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주요 사전은 200년에 한 번의 고조에도 침수되지 않는 위치를 선정하여 세워졌다고 하며, 실제로 다이라노 기요모리 시대부터 850년간 본전 내진(内陣)은 한 번도 침수된 적이 없습니다. 태풍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기요모리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노 무대, 몬가쿠 신사, 가쿠보 등의 부속 사전뿐으로, 이들은 간이 구조로 나중에 추가된 것입니다. 본전, 배전 등 주요 건물은 1991년의 대형 태풍 때에도 피해가 경미했습니다.
이쓰쿠시마 신사 건축의 영향과 역사적 의의
이쓰쿠시마 신사의 건축은 단순한 종교시설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일본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헤이안 시대 귀족 문화를 대표하는 신전조 양식을 신사 건축이라는 다른 맥락에 훌륭하게 융합시킨 점은 건축사상 혁신적인 시도였습니다.
신전조는 본래 귀족의 주택 건축양식으로 좌우비대칭이며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이라노 기요모리는 이 양식을 신사 건축에 응용할 때 세토나이카이라는 자연 경관을 ‘연못’으로 간주하고 사전을 ‘저택’으로 배치하는 독창적인 발상을 실현했습니다. 이 시도는 자연과 건축, 종교와 미학을 일체화한 일본 고유의 미의식의 결정체로서 세계적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1996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에는 이쓰쿠시마 신사가 평가받은 4가지 기준 중 제1기준 “인류의 창조적 재능을 표현하는 걸작”, 제2기준 “특정 기간에 걸쳐 가치관의 중요한 교류를 보여주는 것”, 제4기준 “인류 역사상 중요한 시대를 예증하는 건축양식”이 바로 이 건축적 특징에 대해 부여된 것입니다. 바다 위에 늘어선 건조물군과 배후의 미센 자연이 일체가 된 경관은 12세기에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조영한 사전 설계자의 탁월한 발상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세계유산에 걸맞다고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이쓰쿠시마 신사의 건축 기술은 후세의 신사 건축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바다 위에 세워진다는 특수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다양한 기법—메스카시 구조, 기둥의 부기초, 히와다부키 지붕—은 일본 전통 건축 기술의 정수를 모은 것으로, 현대의 건축 기술자에게도 배울 점이 많은 귀중한 유산입니다.

현대에 계승되는 이쓰쿠시마 신사 건축의 가치
이쓰쿠시마 신사의 건축은 현대에도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로 전통 건축 기술의 계승의 장으로서의 가치입니다. 히와다부키 장인, 미야다이쿠(宮大工), 채색사 등 일본의 전통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정기적인 수복 공사를 통해 기술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히와다부키 기술은 30-40년 주기로 지붕 전면 교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장인의 기술 계승이 불가결합니다. 2019년부터 2022년에 걸쳐 진행된 오토리이의 대규모 수복 공사에서도 흰개미와 부후균에 의한 피해를 수리하고, 히와다부키 지붕을 교체하며, 주홍칠을 다시 칠하는 등 전통 기술의 정수를 모은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수복 공사는 단순한 건물 유지관리가 아니라 일본의 전통 기술을 지키고 전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둘째로 환경과의 공생을 보여주는 모델로서의 가치입니다. 이쓰쿠시마 신사는 바다라는 과혹한 환경 속에서 850년 이상 존속해 왔는데, 이는 자연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힘을 이해하고 그에 순응하는 설계 사상의 덕분입니다. 메스카시 구조로 파도의 압력을 빠져나가게 하고, 기둥을 고정하지 않고 지진 에너지를 흡수하며, 암반 위에 세워 안정성을 확보하는—이러한 기술은 현대의 지속 가능한 건축 설계에도 통하는 지혜입니다.
셋째로 문화 교류의 상징으로서의 가치입니다. 이쓰쿠시마 신사는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추진한 일송(日宋) 무역의 거점이자 세토나이카이를 통한 국제 교류의 무대였습니다. 헤이안 시대 귀족 문화와 해양 신앙이 융합된 건축양식은 다른 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여 독자적인 형태로 승화시키는 일본 문화의 특질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연간 4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국제적인 관광지로서 일본 문화의 매력을 세계에 발신하고 있습니다.
넷째로 재해 복구의 역사적 증인으로서의 가치입니다. 이쓰쿠시마 신사는 두 차례의 대화재, 수많은 태풍 피해를 극복하고 그때마다 복구되어 왔습니다. 겐에이 2년(1207년)과 조오 2년(1223년)의 화재에서는 모든 건물이 전소되었지만, 불과 수십 년 만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장엄한 사전군이 재건되었습니다. 이 역사는 일본인이 어려움에 직면해도 문화유산을 지켜내는 강한 의지를 계속 가져왔음을 보여줍니다.
현대에도 이쓰쿠시마 신사의 건축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전통 기술의 계승, 자연과의 공생, 문화 교류의 중요성,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복구의 정신—이 모든 것이 8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건축에 새겨진 귀중한 교훈입니다.
FAQ
이쓰쿠시마 신사의 건축양식 특징은 무엇인가요?
이쓰쿠시마 신사의 최대 특징은 헤이안 시대 귀족 저택 양식인 신전조를 신사 건축에 도입한 점입니다. 일반적인 신사 건축에서는 좌우대칭이 기본이지만, 이쓰쿠시마 신사는 의도적으로 좌우비대칭 구조를 채용하고 있습니다. 본전·배전·회랑이 바다 위에 늘어서 있으며, 세토나이카이를 ‘연못’으로 간주한 배치는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독창적인 발상의 산물입니다. 또한, 히와다부키 지붕, 회랑의 메스카시 구조, 기둥의 부기초 등 해상 건축에 특유한 기술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사전은 언제 지어진 것인가요?
현재 남아 있는 주요 사전은 가마쿠라 시대 닌지 연간(1240-1243년) 이후에 재건된 것입니다.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닌안 3년(1168년)에 조영한 사전은 겐에이 2년(1207년)과 조오 2년(1223년)의 두 차례 대화재로 전소되었습니다. 다만, 재건 시에는 기요모리 시대의 배치 구성과 건축양식이 충실히 계승되었습니다. 본사 본전은 겐키 2년(1571년) 모리 모토나리에 의해 개축되었지만, 마로우도 신사 본전은 닌지 2년(1241년)의 건축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회랑 마루판에 틈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회랑 마루판에 설치된 틈은 ‘메스카시‘라 불리며, 고조나 태풍 시 해수의 압력을 약화시켜 건물을 보호하기 위한 구조입니다. 이 구조는 ‘슬릿 구조’라고도 불리며, 파도의 에너지를 마루판 틈으로 빠져나가게 하여 도괴를 방지합니다. 마루판은 1칸에 8장씩 깔려 있으며, 판과 판 사이에 의도적으로 틈을 두고 있습니다. 못은 사용되지 않았고, 현재는 참배객이 신발을 신은 채로 걸을 수 있도록 본래의 마루판 위에 양생판이 깔려 있습니다.
히와다부키란 어떤 기술인가요?
히와다부키(檜皮葺)란 수령 70-80년 이상의 노송나무 입목에서 채취한 수피를 재료로 사용하는 일본 고유의 지붕 잇기 기법입니다. 세계 건축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술로, 헤이안 시대 이후 지붕 잇기 공법 중 가장 격식 높은 기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히와다의 내구 연한은 30-40년으로, 이쓰쿠시마 신사에서는 이 주기에 맞춰 적시에 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아하고 화려한 곡선미와 처마가 깊은 약동감 넘치는 대지붕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로서 2020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이쓰쿠시마 신사가 바다에 잠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쓰쿠시마 신사가 850년 이상 바다에 잠기지 않고 서 있는 이유는 견고한 암반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미야지마에는 주봉 미센을 중심으로 큰 암반층이 있으며, 사전은 이 지반 위에 초석을 놓고 그 위에 108개의 기둥을 세워 구조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요 사전은 200년에 한 번의 고조에도 침수되지 않는 위치를 선정하여 세워졌으며, 실제로 다이라노 기요모리 시대부터 본전 내진은 한 번도 침수된 적이 없습니다. 기둥은 초석 위에 놓여 있을 뿐 고정되어 있지 않아, 지진이나 고조 시 에너지를 방출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국보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은 어느 것인가요?
이쓰쿠시마 신사의 건조물은 본전·배전·회랑 등 6동이 국보로, 14동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국보 지정은 본사 2동(본전·폐전·배전, 하라에덴), 섭사 마로우도 신사 2동(본전·폐전·배전, 하라에덴), 회랑 2동(동회랑, 서회랑)입니다. 중요문화재에는 오토리이, 노 무대, 소리바시, 오중탑, 다보탑, 오쿠니 신사 본전, 도요쿠니 신사 본전 등이 포함됩니다. 또한, 헤이케 노쿄를 비롯한 미술공예품도 다수 소장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약 260점이 국보·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신전조의 특징은 이쓰쿠시마 신사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신전조의 특징은 이쓰쿠시마 신사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좌우비대칭 배치 구성으로, 본사와 마로우도 신사를 회랑으로 연결하는 형식은 신전과 쓰이노야를 와타도노로 연결하는 귀족 저택 배치 그 자체입니다. 또한, 본전 지붕이 신사 건축의 정석인 치기와 가쓰오기를 가지지 않고, 히와다부키 지붕에 기와를 쌓은 화장동을 채용하고 있는 점도 신전조의 영향입니다. 하라에덴 중앙 처마가 좌우보다 한 단 높은 점, 회랑에 벽이 없이 개방되어 있는 점 등도 신전조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세토나이카이를 ‘연못’으로 간주한 발상도 귀족 저택의 정원 설계에서 유래합니다.
정리
이쓰쿠시마 신사의 건축은 스이코 천황 원년(593년) 창건부터 1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며, 헤이안 시대 말기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대개수로 현재의 기본형이 확립되었습니다. 헤이안 귀족의 저택 양식인 신전조를 신사 건축에 응용하여 세토나이카이를 ‘연못’으로 간주한 독창적인 설계는 세계 건축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걸작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주요 사전은 가마쿠라 시대 닌지 연간(1240-1243년) 이후에 재건된 것으로, 본전·배전·회랑 등 6동이 국보로, 14동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좌우비대칭 배치 구성, 총연장 275미터에 달하는 회랑, 메스카시 구조의 마루판, 히와다부키 지붕, 암반 위의 부기초 등 해상 건축에 특유한 기술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96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에는 “인류의 창조적 재능을 표현하는 걸작”으로 높이 평가받았으며, 현대에도 전통 기술의 계승, 환경과의 공생, 문화 교류의 상징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8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건축은 자연과 건축, 종교와 미학을 일체화한 일본 고유의 미의식의 결정체로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참고문헌·출처
- 문화유산 온라인: 이쓰쿠시마 신사(세계유산)
- 국가 지정 문화재 등 데이터베이스: 이쓰쿠시마 신사 본사 본전, 폐전, 배전
- 이쓰쿠시마 신사 공식 사이트: 문화재·건조물
- 일반사단법인 미야지마 관광협회: 이쓰쿠시마 신사
- Discover Japan: 바다에 떠 있는 듯 세워진 히로시마 《이쓰쿠시마 신사》 건축×자연으로 둘러보는 신이 깃든 섬
- 미야지마초사 편찬위원회 『미야지마초사 통사편』 미야지마초, 1992년
- 후쿠야마 토시오 『이쓰쿠시마 신사의 건축』 주오코론 미술출판, 1988년
- 니시 카즈오 『이쓰쿠시마 신사의 건축사적 연구』 주오코론 미술출판, 2005년